고대 동방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민족으로 히브리인을 꼽을 수 있다. 일신교로 그리스도교 문명에 기여한 그들은 해상활동과 무역으로 큰 세력을 이룬 페니키아인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민족이다. 히브리 민족은 현대 사회의 세계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관을 발전시켜 서양 문명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히브리 민족 역사에 관한 놀라운 기록이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 성경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셈어족에 속하는 히브리 민족은 유목민으로 아라비아, 시리아, 이집트 등 여러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정착할 곳을 찾았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등과 같은 인물들도 메소포타미아 남쪽에서 팔레스티나 지방에 이르기까지 이곳저곳을 유랑했다. 그들의 유랑생활은 대체로 함무라비 왕 때인 기원전 1800년경에 시작되었다. 이집트로 간 히브리 민족은 기원전 13세기 후반 람세스 2세의 치세에 이집트 지배를 벗어나 가나안에 정착했다. 이때 그들을 이끈 모세의 이야기는 성경의 출애굽기에 기록되었다. 히브리 민족은 이집트와 아나톨리아 두 지역의 강대한 세력 사이에 껴서 독자적인 국가를 발전시키고 특징 있는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받았다는 토라를 기록한 사해문서가 발견되면서 그리스도교 기원 전후의 일부 히브리인의 역사가 알려지게 되었다. 가나안에 정착한 히브리 부족들은 약 150년간 싸움과 변화를 겪으면서 번창했지만 기원전 1050년경 공격을 받아 멸망의 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위기에 히브리 민족은 단일한 왕 아래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어 대항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경의 내용을 보면 단일 왕정을 세우는 것에 대해 야웨의 노가 있다고 사무엘 선지자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국제 정세를 보면 그들의 상황에서는 필요한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한 그들의 의미부여는 달랐다. 오히려 이 행위는 야웨에 대한 신심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결국 이에 대해 야웨의 노를 샀고 이 의견으로 양쪽으로 의견이 나뉘게 되어 세력도 함께 나뉘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세워진 왕은 사울이었다. 그가 기초를 닦은 통일국가는 약 1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다윗의 대에 이르러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강대한 세력을 형성했다.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하고 중앙집권적인 신정정치를 이룩했다. 솔로몬에 이르러 솔로몬의 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히브리인은 이웃 나라와 활발한 통상을 하여 부를 축적했다. 솔로몬은 신전과 궁전을 건축하여 과도하게 국력을 소모했다. 거기에 왕의 전제정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 외래 종교의 문제 등이 주요 원인이 되어 백성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는 또 분열을 조장하여 민족 간의 반목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933년 히브리 민족은 두 개로 분열되었다. 북쪽의 10 부족은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남부의 2 부족은 유대 왕국을 세웠다.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였다. 더 많은 부족의 연합체였던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멸망한 것이다. 남은 유대 왕국으로 히브리 민족의 명맥은 이어졌다. 유대 왕국은 신바빌로니아의 공격을 받아서 기원전 586년에 멸망했다. 이때 예루살렘은 점령되고 신전이 파괴되었다. 많은 유대 사람들이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이를 두고 바빌론 유수라고 표현한다. 기원후 538년에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을 때 히브리 민족은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오랜 기간 떨어져 있던 민족 사이에 단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정치적 독립을 회복하지 못했고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서 종교생활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히브리인들은 고대 동방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때 일어난 분산을 두고 민족 이산이라고 하며, 우리에게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더욱 익숙하게 자리 잡아 있다. 그 후 융성한 로마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지배를 받으면서 탄압과 박해의 시기를 보내게 된다. 이런 역경을 넘는 과정에서 유럽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했다. 그들의 민족적 고통은 극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야웨를 중심으로 한 유일신 신앙을 붙들었다. 비록 모두가 떨어져 있었지만 야웨신앙을 중심으로 모두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각지에 뿌리를 내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 공화국으로 비로소 국가를 수립하게 된다.
히브리 민족은 원래 부족의 보호신에게 충실하게 복종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부터 유일신 사상을 고수했던 것이 아니다.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의 발전의 중심에는 모세가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버림을 받아 강물에 떠내려가는 신세였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남아 제한 정책을 펼쳤다. 이때 죽음을 피하기 위해 갈대상자에 그를 넣어 강물에 띄어 보낸다. 마침 물가에서 시간을 보내던 파라오의 딸이 이 상자를 발견했고, 그 안의 아기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는 이집트 사회에 편입되었고 뒤늦게 정체성을 발견한 모습으로 노예로 사로잡힌 생활을 하던 히브리 민족을 구출한다. 모세를 불러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나오도록 시작과 끝에 야웨가 등장한다. 야웨라는 유일신의 인도아래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며 가나안으로 그들의 새로운 거점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통해 히브리 민족 내부에 야웨 신앙이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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