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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수메르와 아카드 제국, 메소포타미아의 경제

by 길반 2023.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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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문명을 일군 민족이었다. 기원전 3500년경 이 지역의 신석기 사회는 큰 공동체들의 집합체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촌락공동체는 복잡한 도시로 바뀌어갔다. 관개농업도 갈수록 발달하여서 능률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생산량은 늘어갔다. 그 결과로 이 지역의 인구는 늘어가고, 법률과 정치조직, 사회구조는 더욱 복잡해지고 발달했다.

기원전 4000년경 북방에서 침입한 수메르인은 남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했다. 앞서 얘기했듯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개방된 지형이었기에 수많은 민족의 세력 다툼의 장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수메르인도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 농경이 자리 잡고 터가 잡혀서 비교적 큰 도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메르 안에서도 다양한 도시국가들이 분산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패권을 잡기 위한 내부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도시는 인구가 밀집된 성벽 내의 중심지와 계곡을 둘러싼 주변 농업지역 등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성벽 안에는 커다란 신전과 궁전이 함께 있었고 일반 평민들의 가옥도 있었다. 둑이나 운하, 저수지 주변에는 농사를 짓기 위해 농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당시 최대 인구를 가졌던 도시국가는 우르였다. 성서에도 아브라함의 이동과 관련하여 언급되는 갈대아 우르가 바로 이곳이다. 당시 우르에는 귀족과 성직자, 평민, 노예와 같이 세 계급으로 이루어진 계급 사회였다. 왕은 귀족과 성직자들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유지하였다. 어떤 집단이든 기득권의 연대는 같은 계층 안의 이해관계를 담보로 한다. 

수메르인은 모든 재물이 도시의 수호신에게 귀속된다고 믿었다. 왕은 도시 중심의 신전 겸 궁전에 거주하며 생산과 징세 등을 기록하고 전체 주민을 지배했다. 왕을 보좌하기 위해 남녀 사제, 서기관, 건축가, 조각가, 상인, 군인, 세리와 같은 전문가들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을 가진 도시는 인근지역을 정복하여 주민을 노예로 지배했다. 수메르인은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셈족과 접촉하게 되었다. 셈족은 재빨리 수메르 문화 채택하여 도시생활로 전환하였다. 유혈사태를 마주 하기보다는 흡수되는 것을 선택한 셈족의 처세에서 여러 가지 고민해 볼 만한 주제들이 있을 것이다. 

아카드 제국

기원전 2400년경 아카드 민족이 수메르 북쪽에 침입하여 도시국가를 건설하였다. 수메르인들도 개방적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환경에 맞춰 이곳에 들어왔듯 아카드도 쉽게 침입하여 그들을 친 것이다. 아카드 민족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온 셈어족으로 북메소포타미아에서 번영을 누렸다. 그들은 수메르어를 종교 문헌과 예배에 국한하여 사용했다. 비록 그들이 침략한 민족이지만 그들의 앞선 문화가 있다면 수용하여 활용하는 유연성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자신들의 언어인 셈어를 사용하였다. 수메르인의 문화와 경제를 대부분 계승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수용을 통해 더 큰 정치조직을 갖춘 제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마침내 아카드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지역을 통일시켰다.

 셈족은 아라비아 반도와 시리아 사막에서 가장 일찍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해 들어온 민족이었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아카드 민족, 아모르민족, 가나안 민족, 아람 민족, 히브리 민족, 아랍 민족이 이 셈족에 속하였다. 처음으로 아카드 제국의 기틀을 세운 지배자는 사르곤 1세였다. 그는 수메르 도시 국가들을 복속시켰다. 또한 아시리아와 시리아에 이르기까지 지배영역을 확장시켰다. 사르곤 1세가 수립한 아카드 제국은 후계자들에 의해 기원전 2200년까지 지속되었다. 그러나 내부에서 일어난 저항운동과 외부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말았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의 통일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는데 얼마가지 못하는 것을 보며 지형적인 요인이 역사에 참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메소포타미아 경제

메소포타미아의 경제를 보자. 이 문명의 물질적 기반은 농업제도였다. 청동기와 바퀴 달린 보습으로 밭갈이를 하는 발달된 농업기술이 있었다. 그러나 비옥하고 관개된 밭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농토는 귀족계급이 소유하는 대규모 농장이며 소작인이나 노예들이 경작하였다. 이 부분은 현대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농장을 소유하는 귀족계급과 이를 경작하여 다 돌려주고 일부의 수익만을 얻으며 근근이 버티는 소작인과 노예의 모습에서 그려지는 현대의 이미지가 있다. 

 메소포타미아는 다른 지역과의 교역도 활발했다. 메소포타미아는 당시 국제무역의 대중심지로서 인도와 시리아에서 목재, 향신료, 금속과 석재, 황금들을 수입했다. 활발한 교역으로 화폐가 일찍부터 유통되었다. 각 도시에 다수의 숙련된 직인이 있었고 양질의 물품들을 다양하게 생산해서 다른 지역에 팔고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수입했다. 

 왕은 원래 전쟁 지휘자다. 전쟁이 자주 있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도시의 최고권력자로서 왕의 지위는 확고했다. 왕위가 확고하다는 것은 왕위세습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힘이 없으면 왕권을 세습할 수 없다. 왕과 그 가족, 고위 성직자들, 지주, 관리들이 귀족계급을 이루며 지위를 견고하게 했다. 

평민은 자유신분으로 땅을 소유하고 매매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도시행정에 대해 발언권을 가졌다. 법의 보호도 받았다. 하지만 사회신분상 사실은 귀족계급에 예속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예는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전쟁포로 출신이었다. 일부는 범법자도 있었고 채무 노예도 있었다. 채무노예는 3년이 지나면 복권되었지만 다른 노예들은 소유자가 마음대로 처분했다. 노예는 낙인이 찍혀 짐승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의아한 것이 노예도 돈을 빌릴 수 있었다. 일정한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장사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부의 축적이 가능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자유신분을 살 수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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