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동방의 문명이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인류가 모두 같은 시기에 역사생활과 문명을 이룬 것은 아니다. 제일 먼저 하천지역에서 문명이 형성되었다. 이유가 뭘까? 신석기시대부터 농경문화가 시작되었다고 얘기했다. 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다. 바로 수원이 가까이 있어야 농사를 원활하게 지을 수 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수원, 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중국의 황하, 양쯔강 유역, 인도의 갠지스강과 인더스강 유역이다. 서남아시아에서는 메소포타미아와 동북 아프리카의 나일강 유역이었다. 이처럼 나열한 유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농사를 짓기에 알맞은 환경이었다. 특별히 지중해 동남 주변지역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촌락의 공동작업을 통해 곡물을 수확했다. 문화는 전파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농경이 싹을 틔우고 경험으로 누적된 농경법은 점차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신석기 문화를 일찍 끝낸 곳일수록 더 높은 단계의 문명의 수준으로 올라갔다. 바로 그곳이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이었다. 이 지역의 문명은 훗날 서양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기억하자.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유역이다.
기원전 3000년을 전후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지역에서는 금속으로 도구나 무기를 만들었다. 여기가 바로 고대 동방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오늘날의 어디 지역일까? 터키, 이라크, 요르단, 시리아, 이스라엘, 이집트 등이 바로 이 지역이다. 동방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기들이 사는 곳보다 동쪽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테네 중심적 사고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가 알고 있듯 그리스가 세계의 중심이 아닌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고대 동방에서 시작된 문명은 그리스와 로마에게까지 연결되면서 서양 문명의 바탕이 된다. 예수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을 거듭한 이 지역은 문명적으로 여러 특성을 나타냈다. 연계된 지역인 만큼 훗날 서양문명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 메소포타미아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비옥한 삼각형 모양의 지대다. 흔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불렸다. 성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람이라는 이름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지칭한다. 성서를 읽을 때마다 이 개념을 알고 있다면 세계사적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은 터키 아르메니아 지방의 산맥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지류와 습지를 형성했다. 이 지류들이 하나로 합쳐 이라크의 페르시아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 바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오늘날의 터키 동남부, 시리아의 북동부 및 이라크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을 뜻한다. 메소포타미아는 많은 민족의 정착지가 되었으며 최초의 도시들을 발생시킨 땅이다. 기원전 5000년경에 이곳에서 관개 농법이 시작되었다. 농경법이 발달한다는 것은 최신 기술의 발달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지역의 경제와 사회 문화 수준을 급격하게 발달하였다. 우리가 이 지역의 고대어를 공부해 보면 흔히 셈어 계열의 언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당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사용되었던 언어의 계열을 말하는 것이다. 셈어를 사용하는 유목민족 중 아카드 근처 지역에 거주했던 사람들과 남쪽의 수메르인이 정착하여 농사를 지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주류 세력은 아카드의 유목민족과 수메르인이라고 기억하면 되겠다.
메소포타미아는 많은 민족의 정착지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땅의 발전을 보고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니 도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최조의 도시들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수메르인이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를 건설했다. 도구가 발달하면서 금속으로 만든 도구와 무기를 사용했다. 생산력이 높아지면 계산법이 발달하게 된다. 이처럼 계산과 행정 문서를 정리하기 위한 문자가 창안되었다. 점차 금속으로 된 도구와 무기를 사용하는 기술을 익히면서 환경을 운용하는 인간의 능력도 커졌다. 처음엔 구리가 사용되었지만 더 단단한 청동으로 대체되었으며, 청동으로 만들어진 물건들은 이집트, 유럽, 아시아로 전파되었다. 고대 동방의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1200년경 철제도구가 사용되기까지 사용되었다.
금속을 활용하면서 수레바퀴가 널리 사용되었다. 처음엔 나무 바퀴였는데 살을 박은 가벼운 바퀴로 발전하였다. 이젠 썰매대신 수레가 물건이나 사람을 태우는 수단이 되었다. 바퀴는 이동수단으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다. 물건을 제작할 때도 사용되는데 도기를 만들고 여러 가지 무늬를 넣는 기술의 동력으로도 사용되었다. 동일한 시기에 보습이 발명되었다. 보습은 황소에 달아 사용하여 농사의 생산성을 괄목할만하게 끌어올렸다.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경제, 사회
메소포타미아의 정치, 경제, 사회를 살펴보자. 메소포타미아는 해마다 홍수가 일어났다. 근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전체적인 강수량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오히려 부족했다. 그래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이스 두 강이 수원이긴 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여 인위적인 관개사업을 해야만 농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경제는 농업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만큼 상공업도 발달했다. 지리적 특성상 자연자원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통상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동서 쪽과 북쪽에 아무런 자연 장애물이 없었다. 개방적인 환경조건이었다. 좋은 말인 것 같지만, 당시 국가 간의 경계와 방위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공격하기에 쉬웠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다른 민족의 침입이 잦았다. 당연히 인명피해도 무시 못했다. 정부와 같은 하나의 집권 세력이 자리하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다. 그 결과 많은 민족이 흥망하고 여러 국가가 성쇠를 반복하는 복잡한 정치사가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소포타미아 사회, 함무라비 법전 (0) | 2023.06.25 |
---|---|
수메르와 아카드 제국, 메소포타미아의 경제 (0) | 2023.06.25 |
신석기시대로 가는 과도기 (0) | 2023.06.24 |
원시 인류의 출현 (0) | 2023.06.24 |
왜 서양사를 알아야 할까? (0) | 2023.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