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로 가는 과도기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시대는 단절되어 있지 않다. 연결되어 맞물려 진행된다. 지금으로부터 1만 년을 전후로 구석기시대는 끝났다. 빙하가 북쪽으로 후퇴하면서 매머드는 멸종되었다. 인류는 서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신석기 문화다. 결국 오늘날의 인류문명까지 연결되는 문화를 형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신석기 문명으로 넘어가기까지 과도기적 단계가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구석기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신석이 문화를 만든 과도기를 중석기시대라고 일컫는다.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기원전 9000-6000년경 신석기시대로 들어섰고 기원전 4000년 경에 끝난 것으로 본다. 이에 비해 영국은 신석기시대가 기원전 1세기까지 지속되었고 멕시코에는 기원후 14세기까지 계속되었다. 격차가 매우 크다. 이처럼 공통된 시기로 뭉뚱그릴 수 없다. 신석기시대로의 변천은 소아시아 동쪽에서부터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상류에 걸친 고원지대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공동체의 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석기혁명
신석기혁명을 들어봤는가? 신석기 문화는 한마디로 농업문화였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농업이 절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는 인류문명에 있어 새로운 전환기를 이룩한 역대급 사건이었다. 사냥하는 구석기기대에서 농사짓는 신석기시대로 바뀐 것이다. 어떻게 농사가 시작되었는지 아직 잘 알 수 없다. 이 시대의 인류는 기후조건에 대비하여 일정한 곳에 주거지를 정해 살면서 보리나 밀을 비롯한 곡물과 채소, 과일을 심고 수확하였다. 처음에는 밀만 심었는데, 주변에 있던 잡초들이 자연스럽게 비료가 된 것이다. 자연교배가 되어 새로운 종의 곡식이 나왔다. 토기 같은 것으로 종자와 양식을 따로 저장하는 등 수확물을 관리했다.
신석기시대 초기에는 나무나 진흙을 말려 움막집을 지었다. 인공을 땅을 파서 수혈을 만들기도 했다. 나무 위에 귀틀집을 짓거나 호숫가에 호상옥을 만들기도 ㄹ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흙을 불에 구워 만든 벽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확물이 있다 보니 저장소가 필요해졌다. 더 이상 하루 모아 하루 먹는 삶이 아니게 된 것이다. 보관하면서 필요한 때에 맞춰 꺼내 먹게 된 것이다. 거실과 저장소 및 매장터를 만들고 또한 신전, 성벽, 우물과 같은 공공시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구석기시대와 같이 사냥이나 고기잡이를 계속하기는 했지만 주요 수단이 된 것은 가축을 기르는 방면으로 진행되었다. 집에서 키운 최초의 동물은 개지만 털이나 젖을 공급해 주는 양이나 산양이 더 중요한 가축으로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가축의 고기를 먹고 젖을 짜고 가죽과 털로 옷을 만드는 생활양식이 형성되었다.
농산물이 생산되고 식량이 늘어가니 어떻겠는가? 당연히 인구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먹을 것이 생기고 주거에 대한 안정성이 높아지니 당연한 수순이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은 도시가 되었다. 여리고 공동체는 적어도 2천 명 이상이 모여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들은 돌 초석 위에 흙벽돌집을 짓고 도시 경계에는 성벽을 쌓아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제 슬슬 변화가 보인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겨나고 네 것 내 것이 점차 분명 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도시의 모양과 성벽으로 보아 당시에도 도시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점차 정치, 경제, 사회와 관련된 환경이 복잡해졌다. 농업을 하게 되면서 경체 체제와 사회조직이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이해관계가 만들어지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곧 인류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신석기 혁명이었다.
신석기시대의 사회
신석기시대의 사회는 어땠을까? 신석기시대에도 여전히 석기를 사용했다. 단절되어 불시에 나타나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연속선상에서 역사의 흐름을 느껴야 한다. 구석기시대의 타제석기에 비해 신석기시대의 마제석기는 더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새로운 도구로 괭이, 호미, 낫과 같은 도구를 만들었다. 석기와 함께 골각기와 토기를 사용했다. 신석기시대 말기에는 동기도 사용했다. 베를 재배하여 옷을 만들어 입었고 마찰에 의해 불을 일으킬 줄도 알았다. 이처럼 옷을 만들고 불을 직접 일으킬 수 있게 된 것은 구석기시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괄목할 문화적 발전이었다.
집단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마을을 형성했다. 내와 강, 호수, 바다를 따라 옮겨 다니는 범위도 넓어졌다. 농사를 짓다 보니 노동이 전문화되고 분업이 시작되었다. 고동의 기술과 질 좋은 생산물을 수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곡물을 저장한다든지 가축을 늘리게 되었다. 잉여생산물이 발생하였으니 물물교환을 하게 되었다. 소유권이 점점 생겨나면서 외부인들과의 다툼도 잦아졌다. 집단적으로 마을을 나누고 자신들의 것을 지켜야 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점점 방위나 효과적인 사회구조 및 제도가 필요하게 되었다. 가장들이 모여 씨족을 형성하였다. 공동문제의 집단적 해결을 위한 부족형태의 정치조직이 형성된다. 마을의 정치를 지휘하는 책임과 종교 생활을 관할하는 사람은 특별한 지위와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농경사횡에서는 땅의 생산성이 가장 큰 이슈다. 생산성은 큰 엉덩이와 가슴을 가진 여인상으로 표현했다. 당연히 당시 생산성은 여성의 중요성과 결부된다. 여성의 생산성은 곧 마을의 번영을 좌우하는 주요 요소였기 때문이다. 여신의 중요성은 초기 농경사회의 모계사회의 존재와 관계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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