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럽 문명의 뿌리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에 있습니다. 프랑스혁명은 개인의 자유, 주권재민, 민족주의적 애국사상 등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노동, 운수, 생활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이러한 맥락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1776년 아메리카 혁명으로부터 1848년 2월 혁명이 있기까지 유럽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변화는 산업혁명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이때의 기술 발전이 농업의 형태와 공장체의 병행으로 산업생산적인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냈습니다. 이 변화는 대전환이었습니다. 유럽 문명의 근본 자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산업 기술과 생산의 변화가 19세기에 유럽 각국으로 파급되고 마침내 전 세계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었습니다. 고요하고 한가했던 전원생활은 활동적인 도시생활로 바뀌었습니다. 인력이 대거 도시로 이동하였습니다.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인구 이동으로 공업도시가 형성되었습니다. 기차와ㅠ 기선이 사람과 화물을 신속하게 옮기고 신문도 소식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사회 전반의 변화도 야기했습니다. 새로운 계층, 즉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신분으로 나뉘게 만들었습니다. 두 계급 간에는 새로운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본 기업가들은 자본 경쟁기업, 자본의 사유, 수요 공급의 경제원리를 강조했습니다. 이에 반해 노동자 진영에서는 사회주의적 이념과 실천을 주장했습니다. 두 계급에서 주창하는 내용이 다르다 보니 양쪽 사이의 이견 차이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사회주의 노선은 독일의 철학자 마르크스에 의해 설득력이 강한 이론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은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실현되었습니다. 그 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현대국제정세에 계속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현재 공산주의 국가들이 붕괴된 현실이지만 사회주의 이념은 여전히 역사적인 영향력을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1620년부터 1650년까지 유럽 인구는 전쟁, 기아, 질병으로 급격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생산력을 책임지는 청년들이 없었기 때문에 경작되지 않는 땅도 많아졌습니다. 그냥 경작지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을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독일, 폴란드를 비롯한 남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 유럽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소 추세도 18세기부터 증가추세로 돌아섰습니다. 18세기에는 온화한 기후가 계속되었습니다. 기후의 안정으로 생산력이 증대되었습니다. 그 결과 식량 공급이 비교적 원활해진 것입니다. 폴란드와 헝가리, 러시아에서 토지 개간 사업이 진척을 보아 식령 공급이 늘어났습니다. 영양이 갖춰진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된 18세기 사람들은 질병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습니다. 유럽 인구는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인구증가는 경제활동의 속도 및 규모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7세기의 경제적인 정체와 비교해 18세기는 불경기가 종종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1730년대 이후에 경기가 상승 국면 들어섰습니다. 18세기의 처음 수십 년 동안 전반적으로 안정되어 있던 물가가 인구가 증가하면서 함께 상승세로 돌아섰습니다. 1730년대부터 1815년까지 물가는 점진적으로 올랐습니다. 인구증가와 급속한 도시화는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출현과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자본주의는 사기업이 상품과 서비스를 시장에 자유롭게 유통시키고 수익을 올리는 경제제도입니다.
산업혁명은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은 새 기술, 새로운 화력, 방대한 시장 지배를 주도했습니다. 그 결과 세계 경제에서 월등한 우위를 점했습니다. 18세기말 영국은 유럽에서 제일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인구가 많은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다양한 자원을 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위한 적절한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동쪽 평야는 비옥하고 생산적인 지역이며 전통적으로 영국의 중심주거지역이었습니다. 서북쪽 고지대는 풍부한 석탄과 철이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높은 지대에서 뻗은 수력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영국의 산업을 촉진시킨 요인은 숙련된 기술과 높은 생활수준이었습니다. 영국은 수공업이 많이 발달해 있었습니다. 기존에 이어오던 과정이 있었기에 새로운 공장제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영국의 유산계층이나 상층 계급은 혁신과 개선에 잘 적응하였습니다. 장자 상속제도로 귀족에서 떨어진 둘째 아들 이하의 귀족 자제들은 산업계에도 적극 진출하는 흐름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토지를 자본화한 기업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정부는 유산층의 기업진출을 장려했습니다. 정부의 지지는 더욱 산업혁명을 위한 유리한 조건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더욱이 영국 정부는 해외식민운동을 장려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장려가 더욱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는 흐름을 형성했습니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이 추진되었습니다. 영국은 식민지를 원료 공급지 및 소비 시장으로 1780년까지 세계통상에서 중심 위치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서 먼저 산업혁명이 시작될 수 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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