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공양왕 4년)7월 12일
시중 배극렴은 왕대비를 찾아갔습니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잃었고, 인심도 이미 떠나가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폐하기를 청합니다”
왕대비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배극렴의 청을 허락하여 공양왕은 폐위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교지를 남은이 공양왕에게 가지고 갔지요. 자신의 폐위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땅에 엎드려 남은이 읽는 교지를 들었습니다.
내용을 들은 공양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실록에서 말합니다.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공양왕은 4년의 즉위 기간을 뒤로 하고 폐위되어 원주로 떠났습니다.
공양왕이 몰려나고 4일동안 왕위는 비어있었습니다. 공민왕의 왕비인 대비 안씨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는 식으로 모든 정무가 처리되었지요.
그렇게 4일이 지난 1392년 7월 16일
배극렴고 정도전, 조준을 주축으로 한 백관들이 옥새를 들고 이성계의 저택을 찾아갑니다.
이젠 정말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만 하는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성계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겁니다. 왕위에 오를 것을 권하는 쪽과 이를 사양하는 자, 양쪽의 대치가 저녁 시간, 해질 무렵까지 계속되었지요. 안되겠다 싶었는지, 배극렴이 문을 밀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옥새를 두고 이성계의 왕위 즉위를 청했습니다. 계속되는 청에 이성계는 방안에서 문 밖으로 나오니 배극렴과 백관들이 이성계에게 절을 하고 북을 치면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나라에 임금이 있는 것은 위로는 사직을 받들고 아래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 군정과 국정의 사무는 지극히 번거롭고 지극히 중대하므로 하루라도 통솔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니 마땅히 왕위에 올라 신과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소서!”
이성계는 이런 상황을 매우 두려워 했다고 실록에 기록되어있는데요. 그는 이렇게 답변했다고 하지요.
“예로부터 제왕의 일어남은 천명이 있지 않으면 안되오. 나는 실로 덕이 없는 사람인데 어찌 감히 이를 감당하겠습니까?”
그래도 백관들의 주청은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즉위 요청에 이성계는 마지못한 듯 수창궁으로 향했습니다. 먼저 앞서 가 있던 백관들은 궐문에서 줄을 지어 영접하고 이성계는 말에서 내려 전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 어좌 앞에 섰습니다. 그는 어좌에 앉지 않고 서서 육조 판서의 관원들을 불렀습니다.
“내가 수상이 되어서도 두려운 생각으로 직책을 다하지 못할까 염려했소. 어찌 이런 날을 볼거라 생각했겠소. 경들은 마땅히 각자 마음과 힘을 합해 덕이 적은 이 사람을 보좌해주시오.”
이렇게 왕위에 오른 이성계, 그의 나이 58세였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개경에 돌아와 고려 생활을 시작한지 3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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