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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이성계2

[조선왕조실록 EP4] 조선의 개창 - 태조 이성계 삼봉 정도전과 급진개혁파 1392년(공양왕 4년)7월 12일 시중 배극렴은 왕대비를 찾아갔습니다. “지금 왕이 혼암하여 임금의 도리를 잃었고, 인심도 이미 떠나가서 사직과 백성의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폐하기를 청합니다” 왕대비에게는 힘이 없었습니다. 배극렴의 청을 허락하여 공양왕은 폐위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교지를 남은이 공양왕에게 가지고 갔지요. 자신의 폐위 소식을 들은 공양왕은 땅에 엎드려 남은이 읽는 교지를 들었습니다. 내용을 들은 공양왕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실록에서 말합니다. “내가 본디 임금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여러 신하들이 나를 강제로 왕으로 세웠습니다. 내가 성품이 불민하여 사기를 알지 못하니 어찌 신하의 심정을 거스른 일이 없겠습니까” 이렇게 공양왕은 4년의 즉위 기간을 뒤로 하고 폐위되어 원주로 .. 2023. 11. 30.
[조선왕조실록 EP3] 고려의 멸망-급진개혁파의 승리와 새로운 시대 | Korean History Joseon Dynasty 조민수의 유배 이후 ‘김저 사건’이 일어납니다. 김저는 최영의 친적이었는데요. 이 김저와 정득후라는 두 사람이 폐위되어서 여주에 있는 우왕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우왕과 함께 다시 왕위에 오르기 위해 모의했다는 사건이지요. 우왕과 함께 이성계를 암살할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려다가 실패했다는 내용인데요. 정득후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고 김저는 잡혔습니다. 이 김저를 국문한 끝에 받아낸 자백이 반대파 처벌과 창왕의 폐위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김저 사건으로 우왕은 여주에서 강릉으로 유배지가 옮겨졌고 우왕과 창왕은 공민왕의 혈통이 아닌, 공민왕의 책사인 신돈의 자식이라는 폐가입진 논리가 대두되었습니다. 공민왕의 혈통이 아닌 우왕과 창왕이 왕이 되었으니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결국 조민수와 온건파에서 .. 2023. 11. 14.